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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방패

감정을 누르면 어디에 남는가

by what-you-need 2025. 6. 9.

1. 감정은 지나가지 않는다, 쌓인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감정을 느낀다. 기쁨이나 설렘 같은 감정은 쉽게 드러내지만, 슬픔이나 분노, 억울함 같은 감정은 자주 숨긴다. “지금 울면 안 돼”, “이걸로 기분 나빠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거야”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감정을 삼킨다. 그러나 그렇게 억눌러진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은 지나가지 않고, 그대로 우리 안에 쌓인다.

감정은 느끼고 나서 표현될 때 비로소 사라진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면, 그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된다. 처음에는 참을 수 있을 만큼 작아 보이지만, 반복적으로 억눌릴수록 감정은 덩어리가 되어 마음 깊숙한 곳에 쌓인다. 예를 들어, 계속해서 화를 참는 사람은 어느 순간 사소한 일에도 폭발하거나,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오는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그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억눌린 감정이 '이제는 더 못 참겠다'며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감정의 ‘잔존성’이라 부른다. 억눌린 감정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다가 특정 자극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의 대화나, 특정한 장소, 말투, 분위기만으로도 갑자기 감정이 휘몰아치는 일이 생긴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지만, 마음속에서는 누적된 감정이 다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억눌린 감정은 절대 묻히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남아 있을 뿐이다.

 

감정을 누르면 어디에 남는가

2. 감정을 억누를수록 몸이 기억한다

감정은 마음의 일이지만, 그 흔적은 몸에도 남는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속이 안 좋아진다”, “걱정이 많으면 잠이 안 온다”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계속 억누르면, 그 감정의 에너지는 신체적인 불편함으로 바뀐다. 이는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생리적인 반응이다.

특히 자주 감정을 억제하는 사람들은 몸에 특정한 습관이 생긴다. 어깨를 늘 움츠리고 다닌다거나, 말할 때 소리가 작고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거나, 호흡이 얕고 빠른 특징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오랫동안 누르느라, 몸 전체를 긴장 상태로 유지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몸이 그 감정을 대신 ‘지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억눌린 감정은 면역력 저하, 소화불량, 만성피로와 같은 신체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우리 몸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려고 한다. 교감신경이 과활성화되어 심장은 빨리 뛰고, 근육은 쉽게 피로해진다. 감정을 조용히 참는 습관은 언뜻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몸의 여러 기능을 손상시키는 조용한 병이 된다.

감정은 반드시 흘러야 한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듯이, 감정도 흐르지 않으면 몸 어딘가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감정을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것이 진짜 건강한 삶이다. 억누른 감정은 결코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몸속 어딘가에 깊이 남아, 결국 신체적 신호로 우리에게 말하려 한다.

 

3. 참아왔던 감정이 터질 때, 우리는 무너진다

억눌린 감정이 계속 쌓이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터진다. 이는 마치 압력솥의 증기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것처럼 격렬하게 나타난다. 별일 아닌 말에 울컥 화가 나거나, 평소 같았으면 무시했을 상황에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 폭발은 그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의 반란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감정 폭발을 경험한 뒤 스스로를 자책한다.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아”, “이 정도 일로 왜 내가 이렇게 무너졌지?”라고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민함이 아니다. 그것은 수년간 혹은 수개월간 참아온 감정이 더는 눌러지지 않아, 안에서 밖으로 밀려 나온 것일 뿐이다.

억눌린 감정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억제하는 데도 많은 힘이 들고, 폭발할 때도 큰 힘이 발생한다. 이 감정의 에너지를 너무 늦게 마주하면, 그것은 감정 그 자체를 해결하는 문제를 넘어서, 삶 전체를 흔드는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불면, 불안, 무기력, 대인 기피 등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잘 참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자세라고 믿는다. 하지만 진짜 어른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는 사람이다. 감정을 참는다는 것은 상황을 무시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신을 무시한 감정은, 언젠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이유가 된다.

 

4. 감정을 지키는 심리방패, 받아들임의 힘

억눌린 감정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막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지켜주는 심리방패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울고 싶으면 울고, 화가 나면 화났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느끼는 것, 표현하는 것, 인정하는 것이 곧 치유의 시작이다. 감정은 표현되어야 흘러가고, 흘러가야 치유된다. 그동안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는 법은 배웠지만, 감정을 받아들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첫 연습은 감정을 정확히 ‘이름 짓는 것’이다. “답답해”보다는 “속상하다”, “외롭다”, “무시당한 느낌이 든다”처럼 구체적인 언어로 감정을 표현해보는 것이 좋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면, 막연했던 감정이 정리되기 시작한다. 그 감정이 나쁜 것도, 틀린 것도 아니며, 그저 지금 내 안에 있는 감정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내 감정을 이해해주기만 해도, 감정은 훨씬 덜 위험해진다. 감정을 누를수록 그것은 폭력적으로 변하지만,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것은 오히려 나를 돕는 내면의 신호가 된다.

‘심리방패’란 감정을 무조건 밀어내는 장벽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감정과 건강한 거리를 두게 해주는 마음의 기술이다. 억눌린 감정에 지지 않기 위해서는, 감정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감정은 나를 흔들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언어이다. 감정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곧 회복이며,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