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를 망친다
1. 익숙한 위로, 위험한 습관
우리는 실수나 후회를 마주할 때 종종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넨다. 이 말은 얼핏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방어하는 기능을 한다. 상황이 어려웠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식의 말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덜어주는 심리적 완충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다 보면, 그것은 점점 현실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고 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문장은 결국 행동에 대한 책임을 흐리게 만든다. 처음에는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시작했던 말이, 점차 실수를 정당화하고 개선의 기회를 막는 장벽이 된다. 이 위로는 편안하지만, 동시에 자기 성찰을 방해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나의 감정, 나의 행동, 그리고 그에 대한 반성을 미루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의 성장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당장 자존감을 지키는 데는 효과가 있는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존감은 마치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외부의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고 찢어지기 쉽다. 견고한 자존감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면서도 스스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태도에서 생겨나야 한다. 그런데 자기합리화는 그 과정을 생략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나를 지키는 말이 아니라, 점차 무너뜨리는 말이 된다.
2. 반복되는 정당화, 무너지는 자아감
자기합리화는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한 번의 실수를 ‘상황 탓’으로 넘기기 시작하면, 그 다음 실수도 쉽게 정당화된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으니까”, “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똑같이 했을 거야” 같은 말들은 점차 습관이 된다. 이 습관은 자아의 핵심을 약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일관된 이해, 즉 자아감(self-identity)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다.
자아감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에 대한 내면의 기준이다. 그런데 자기합리화는 이 기준을 현실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꿔버린다. 나의 결정이 스스로 정한 원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에서 비롯될 때, 자아감은 점점 약화된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정체성의 일관성도 사라진다. 그렇게 우리는 타인의 시선보다 더 무서운, ‘내가 나를 못 믿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자기합리화가 무의식적으로 강화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나를 보호하려 했던 말이, 반복될수록 진실을 감추는 수단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다 보면 마음속에서는 늘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남아 있고, 그 불편함을 덮기 위해 더 많은 합리화가 필요해진다. 이렇게 되면 악순환이 시작된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진지하게 되묻지 않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3.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의 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은 때때로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이 감정의 회피나 반성의 회피로 사용될 때는 오히려 감정의 흐름을 끊고 자신을 가두는 도구가 된다. 예를 들어, 갈등 상황에서 상처를 주었음에도 “나는 원래 그런 걸 잘 못해”라며 자신을 정당화하면, 그 말은 더 이상 자신을 지키는 말이 아닌, 관계를 회피하는 도구가 된다.
그 말은 겉으로는 부드럽고 논리적인 위안처럼 들리지만, 내면에서는 자신에게 실망할 기회를 박탈한다. 우리는 실망을 통해 배우고, 반성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자기합리화는 실망과 반성을 ‘불필요한 고통’으로 여겨 제거해 버린다. 이 과정은 점차 감정적인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키고, 인간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진정한 변화는 불편함에서 시작되는데, 합리화는 이 불편함을 일시적으로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합리화는 다른 사람과의 감정적 거리도 벌리게 만든다.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 이해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 뒤에는 사실상 상대방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진심 어린 소통은 어려워지고, 결국 관계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관계뿐 아니라 내면의 자기 감각까지 흐릿해지는 것이다. 나는 정말 이 선택을 원했는가, 아니면 상황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믿기로 한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질 수 없다면, 자존감의 뿌리는 더욱 약해진다.
4. 심리방패는 변명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는 힘이다
진정한 심리방패는 감정을 회피하거나 덮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이다. 자기합리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스스로를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 건강한 심리방패는 감정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말하기 전에, “그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나?”, “왜 나는 그런 선택을 했고,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를 자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질문은 나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감정과 선택, 행동 사이의 연결고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과 함께 설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얻게 된다. 자존감을 회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긍정적인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일이다.
심리방패는 내가 나를 변명 없이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그 방패는 진실에서 비롯된다. 그 진실은 내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나 자신을 존중하려는 마음에서 자라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합리화의 함정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설 수 있는 내적 근력을 키우게 된다. 그렇게 자존감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힘 위에서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