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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방패

가스라이팅: 그들은 왜 감정을 조작하는가

by what-you-need 2025. 5. 29.

1. 감정 조작의 시작: 왜 가스라이팅은 늘 조용하게 다가오는가

가스라이팅은 언제나 폭력처럼 시작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지나치게 이해심 많은 태도를 보이며, 피드백을 빙자한 조언을 건넨다. 이것이 ‘조작의 전조’이다. 조작자는 감정에 대한 접근 권한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과 감정을 해석하는 방식에 천천히 개입하면서, 대상자가 감정을 의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네가 그런 식으로 느낀다면 내가 미안해” 같은 말은 겉으로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상대의 감정 해석 체계를 무력화한다.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부정’이 아니라 ‘정서적 혼란’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감정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감정을 ‘이상하게 느끼는’ 상대를 문제로 만든다.

이러한 조작은 심리학에서 인지적 재구성의 강제라고 볼 수 있다. 상대의 감정을 ‘틀렸다고 말하는 대신’, 해석의 기준을 자신에게 몰아가는 것이다. 감정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다. 하지만 조작자는 감정을 일종의 '객관화 가능한 것'처럼 다룬다. 마치 모든 감정에 정답이 있고, 자신은 그 정답을 아는 사람인 양 행동한다.

결국 피해자는 감정을 느껴도 “내가 너무 민감한가?”, “이건 과한 반응인가?”라고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이런 자기검열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감정을 외면하거나 억누르게 되고, 조작자는 점점 더 쉽게 심리적 중심을 점령하게 된다. 조작의 핵심은 거칠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감정의 주인’ 자리를 바꾸는 데 있다.

 

2. 조작자의 심리: 통제욕은 어떻게 감정 왜곡으로 변질되는가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악의를 가진 존재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조작자들은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내면에 깊은 불안정성과 자아의 혼란을 갖고 있으며, 이를 외부를 통제함으로써 해소하려는 습성을 보인다. 특히 감정이라는 요소는 그들에게 있어 ‘두렵고 복잡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들은 감정이 표출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 ‘제거’하려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상황은, 조작자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혼란이다. 이때 그들은 감정을 ‘없애야 할 문제’로 간주하고, “그렇게까지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니야”라며 덮는다. 이는 감정 억압을 강요하는 형태의 방어기제이다.

심리학적으로 조작자의 행동은 종종 '경계선적 성향(Borderline traits)'이나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맞닿아 있다. 그들은 타인의 감정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우월감이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 해석의 권한을 쥐려고 한다. 이때 감정은 ‘공감해야 할 신호’가 아니라 ‘정리해야 할 오답’으로 처리된다.

결국 가스라이팅은 통제의 문제다. 그러나 이 통제는 외부 대상의 감정을 향한 것이기 이전에, 자기 내면의 불안을 덮기 위한 통제 시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자기보호적이다. 조작자는 강해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을 감당할 수 없는 유리 멘탈을 감추고 있다. 그들은 상대를 해체함으로써만,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3. 감정의 주인이 사라질 때: 조용한 자기소멸의 구조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말이 줄어든다. 처음에는 상처에 대해 분노하거나 슬픔을 느끼며 감정을 표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을 말하는 것이 두렵고 피곤한 일이 된다.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그건 네가 예민한 거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라는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처음엔 억울함과 당혹감이 있지만, 이런 반응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감정을 표현하는 자체를 문제로 여기게 된다. 스스로를 검열하며 말하기 전부터 감정을 걸러내게 되고,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침묵(emotional silencing)' 상태로 이어진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침묵은 종종 인내나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감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결과다. “말해도 소용없다”, “또 민감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라는 생각은 감정을 억누르게 하고, 피해자는 점점 감정 없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하지 못한 분노는 위장 장애로, 삼켜버린 슬픔은 불면과 가슴 통증으로, 억제된 공포는 만성 긴장과 두통으로 나타난다. 이는 '신체화 증상'이라 불리며, 몸이 내면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피해자조차 이를 단순한 피로나 건강 문제로 여긴다는 점이다.

정서 억제는 기억과 사고에도 영향을 준다. 감정이 차단되면, 과거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감정 없는 영상처럼 남는다. 이는 기억-감정-사고의 연결 구조를 해체하며, 자아 감각을 손상시킨다. 더욱이 이런 고통은 겉보기에 학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는 자신을 탓하고 학대를 학대라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피해자는 타인의 감정과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감정을 느끼고 해석하는 주체가 아니라, ‘조절되어야 할 감정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조용한 자기소멸이 시작된다. 이 과정은 격렬하지 않아서 더 위험하다. 일상 속에서, 침묵 속에서, 피해자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가스라이팅: 그들은 왜 감정을 조작하는가

 

4. 정서적 주권의 회복: 감정을 되찾는 것이 곧 나를 되찾는 일이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기 위한 진짜 회복은 감정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감정을 억누르고 외면했던 시간이 길수록, 우리는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감정은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회복을 이끄는 도구이다. 감정을 되찾는 것은 곧 나를 되찾는 일이다.

첫 번째 단계는 감정 인식이다. 스스로에게 묻는 단순한 질문이 시작점이 된다.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그 감정은 무엇 때문인가?”, “이 감정을 나는 받아들이고 있는가?” 처음엔 막막할 수 있지만, 반복될수록 감정은 점차 선명해진다. 감정은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허용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두 번째는 감정 언어화 훈련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말은 곧 자기를 보호하는 언어다. 단순히 “기분 나빠”가 아니라, “나는 지금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답답하다”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구체화하면 나 자신도 그 감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타인과의 오해도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감정의 기준을 외부가 아닌 ‘내 안’에 다시 세우는 일이다. 타인의 피드백은 참고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내 감정의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는 없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그 감정을 지키는 일은 곧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감정을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타인의 말에 흔들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이끄는 주체로 돌아오게 된다.